영화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러시아 영화의 유산을 제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기 영화 미학 실험의 선봉이었던 에이젠슈타인 이후 소련-러시아 영화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놀랍게도 고유한 예술적 전통을 구축해 왔다. 한국에서의 러시아 영화의 수용도 그에 상응한다. 1920년대 한국 최초의 영화인들은 에이젠슈타인의 영화미학에 열정적인 지지를 보냈고, 1990년대 시네필들은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치열한 예술정신에 매료됐다. 한·러 수교 30주년에 러시아 영화를 재사유하는 것은, 장구한 교류의 역사를 상기하고, 새로운 접속의 가능성을 모색키 위함이다. 미디어 환경의 급변과 문화정치적 관계의 재편 속에서 러시아 영화의 유산을 새롭게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문화적 실천의 가능성을 타진코자 한다.
영화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영화제가 있다. 소비에트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러시아인들은 다양한 영화제를 열고 영화를 향유해 왔다. 그리고 이는 언제나 새로운 영화들이 창안된 장이었다. 해빙기 소비에트 영화의 탄생과 함께 했고, 지금은 러시아 영화의 창이 되고 있는 모스크바 영화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에이젠슈테인에서 타르코프스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러시아 영화인들이 서구의 유수 영화제들에 초대된 역사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러시아 영화의 순간들이다. 모스크바의 대륙 반대편 극동 지역에도 탈 냉전기에 많은 영화제들이 열려오고 있다. 이들은 최근 이 지역의 역동적인 문화적 기운과 만나 강력한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
사회 | 석영중(고려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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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 홍상우(경상대) | 러시아 및 구소련 국가의 영화제 현황과 전망 |
이희원(상명대) | 국제영화제와 러시아 영화의 발견 | |
라승도(한국외대) | 러시아 극동 지역의 영화제 |
타르코프스키와 에이젠슈테인은 명실상부하게 러시아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하지만 이들을 망각하지 않고서 과연 새로운 영화가 과연 가능할까? 이들 이후 러시아 영화는 어쩌면 오랜 시간 잠들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빙기 러시아 영화의 미학을 재발견함으로써, 그 오랜 잠을 깨우고 러시아 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을 환기하는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러시아 영화의 기원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초기 소비에트 예술은 인류 예술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성취의 순간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중심에 영화가 있었다. 에이젠슈테인의 후기 영화미학을 재해석하는 논의를 통해 러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환기된다.
사회 | 이형숙(고려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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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 이상용(영화평론가) | 채워지지 않는 틈: 에이젠슈테인과 타르코프스키를 망각하기 |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 러시아 영화의 깊은 잠 | |
이지연(한국외대) | 소비에트 영화 다시 읽기: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에이젠슈테인 |